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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나의 중학교 생활기 1.................전태희
  글쓴이 l 조은씨앗 작성일 l 2020-02-24 오전 11:19:27 조회 l 1146 추천 l 1

어색한 교복을 입고 스쿨버스에 올라타던 아이를 보며

언제 저렇게 컸나 싶었는데 어느덧 마지막 중학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죠. 아이들은 빨리 커가고 엄마는 자꾸 늙어요^^

아래글은 태희가 중학생활을 하면서 가진 이런저런 고민들을 써서

충남학생문학제에 출품한 글입니다. 이렇게 나마 태희의 소식을 전합니다.


 

학교_1

대철중학교 2학년 전태희

 

확 열어젖힌 커튼 사이로 화려한 아침햇살이 쏟아진다. 억지로 졸음을 쫓으며 느릿느릿 일어나 교복을 챙겨 입고 주방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는 사이 진즉 일어나 개 산책을 마친 부지런한 동생이 들어온다. 식탁의 내 자리에서 맞은편 창문으로 바라다 보이는 살구나무 꽃망울이 한껏 부풀어 올라 아슬아슬하게 터지기 직전이다. 봄이다. 그러고 보니 아빠의 트랙터 엔진소리가 아까부터 들려오고 엄마의 옷차림도 밭으로 가기 위한 작업복이다.

 

요즘 피아노 연습에 재미를 붙인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피아노를 치고 시끄럽다는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집은 농촌에 있는 단독주택이기 때문에 맘껏 뛰고 소리 지르고 피아노며 꽹과리며 맘대로 칠 수 있다. 내가 여덟 살이 되자 엄마는 피아노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강렬하게 배우고 싶다고 느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배우는 피아노는 그다지 재밌지 않았다. 악보를 읽기 위해서 외워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듣기 좋은 연주곡들을 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지루한 연습의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양손으로 쉬운 동요를 칠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때 나는 피아노를 그만 치겠다고 선언했고 엄마도 억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 지금 나는 다시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운 연주곡들을 유튜브를 통해서 보고 듣고 악보를 사서 혼자 연습한다. 다소 어려운 악보들을 읽고 연습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고 싶다. 너무나 하고 싶다. 재미있다. 그때는 그토록 싫었던 것이 왜 지금은 좋은 것일까. 그래서 왜 가르쳐 줄때는 싫다고 하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하느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것일까.

 

어제 연습하던 곡을 떠올리고 피아노로 향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지각하지 않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느슨해진 운동화 끈을 매만지는 사이 왼쪽 전방에서 학교이름이 커다랗게 새겨진 스쿨버스가 도착하고 이미 시내에서 먼저 탄 반가운 친구들의 얼굴이 보인다. 새 학기가 되면서 시내에서 오는 신입생들이 많아져 스쿨버스는 이제 꽉 찬다. 스쿨버스 기사님께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옆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곧 주유소를 낀 사거리가 보인다. 저 사거리만 돌아가면 지난 일 년을 보낸 나의 중학교 교문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학교들은 다 비슷하게 재미없는 모양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학교 역시 그렇다. 학교 건물은 정말 창의력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게 분명하다. 학교에 가면 거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 ‘희망’ ‘미래’ ‘창의’ ‘슬기같은 커다란 글씨들도 얼마나 천편일률적인가.

중앙 현관 위 흐릿하게 보이던 현판의 글씨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선명하고 크게 보인다. ‘더불어 행복한 품위 있는 교육이라고 씌어있다. 우리의 교육이 더불어서 행복할까. 품위 있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나는 집 근처의 중학교에 가지 않고 농촌의 작은 학교를 선택했다. 나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 옆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 주변의 상가 건물들엔 온통 화려하고 큰 학원 간판이 매달려 있었고 유리창은 과학, 수학, 영어, 논술이라는 비닐 옷을 입고 있었다.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어 얼마나 많은 성적 상위권의 학생들이 자기 학원에 다니고 있는지 홍보하는 곳도 있었다. 6학년이 되었을 때 적어도 내 친구들 중에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나중에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문제집을 보면서 그것이 중학교 과정 문제집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시험이 없어진 초등교육이지만 쪽지시험처럼 단원평가를 하기도 하고 수업시간을 통해서도 서로 친구들의 학업 성취도 정도는 알 수 있는데 그 중에는 6학년 과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중학교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도 있었다. 방학을 앞두고 결석을 하더니 개학하고 돌아 와서는 한 달 동안 대치동에 가서 공부하고 왔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미 중학교 과정을 선행하는 아이들에게 6학년 수업은 재미없고 시시하다. 때로 그거 학원에서 다 배웠어요.’ 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학원숙제가 많으니 학교 숙제는 많이 내주지 말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은 항상 소란스러웠다. 선생님의 훈계에도 조용함은 잠시 뿐 떠들고 장난치는 일은 반복되고 심지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침 일찍 교실에 와서 스마트 폰 게임을 하다가 짜증이 난다고 욕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친구도 있었다. 계속 수업을 방해하며 심한 장난을 치는 남자아이 때문에 급기야 영어선생님은 울기도 했다. 교실 안에 존재하는 권력구조는 잔인했다. 비싼 최신의 자전거나 게임기를 가진 아이를 중심으로 모인 남자들의 무리와 약한 친구를 따돌리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아이를 중심으로 모인 여자들의 무리로 나뉘어져 갈등과 대립은 깊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특히 남자 아이들의 끈끈한 결속력은 저녁마다 만나는 온라인 게임 단체 채팅방에서 이루어 졌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욕하고 따돌렸다. 체벌금지의 숭고한 가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히려 선생님들의 약점이 되었고 아이들은 더욱 그 약점을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끔찍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폭력과 수업방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선생님들, 아이의 마음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학원으로 몰아넣고 공부만 잘하길 바라는 부모님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억지로 시키는 공부만하고 남는 시간은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학교는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나는 중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통보했다. 엄마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성인이 될 때 까지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계획표를 짜서 달라고 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중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중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중학생이 된 지금 주변의 많은 친구들은 학교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한다. 어차피 학교의 공부는 시험과 입시만을 위해서 존재하니 공부는 그냥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시험 볼 때만 왔으면 좋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그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차피 학원에서 진도도 나가고 답을 찍는 요령은 물론 시간 안에 문제 푸는 연습도 반복하고 학교 시험을 앞두곤 기출문제를 뽑아준다고 하니 어찌 보면 그런 친구들의 생각은 당연한 결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들이 세상 만물에 대해 오래도록 많은 물음표를 던지길 원했을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인류가 늘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문제들과 대면하길 원했을 것이다. 고귀한 학문들이 요점정리라는 이름을 쓰고 마구잡이로 줄여져서 아이들에게 단기간에 주입된다는 사실을 만일 아인슈타인이 안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지지 않을까.

내가 세계사에서 읽은 그 어떤 인물도 아이들이 일종의 벼락치기 식으로 공부하길 원하지 않았다. 어떤 위인도 평생의 즐거움이 되어야 할 학문이 12년 치 싸움판으로 바뀌길 원하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독립운동가도 그저 역사점수를 따기 위해 외워야 하는 이름이 되려고 희생되지 않았다.

 

내가 어제 저녁 늦게 까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들어야 했던 엄마의 잔소리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직은 아름다운 선율이 되지 못한 나의 미숙한 연주가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학업에 대한 부담이 적었던 초등시절에 진즉 배웠더라면 좋지 않았겠냐는 책망의 소리라는 것을. 그래서 이제 대학입시를 향해 박차를 가해도 부족한 시간을 피아노 연주로 허비해서야 되겠냐는 조급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러한 어른들의 조급함이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의 탈을 쓴 사설학원으로 내몰고 초등과정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중학교 문제집을 들고 다니며 학교 쉬는 시간마다 풀어야 하는 원인이 되었음을 알기는 하는 걸까. 스스로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때 공부하고 노력해서 알아가는 즐거움을 지금의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걸까. 어릴 적 억지로 배웠을 때 재미없던 피아노가 지금은 이토록 재미있는데 어른들이 정해 놓은 배움의 적기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학교를 나서며 다시 중앙 현관의 현판을 읽어본다.

더불어 행복한 품위 있는 교육

과연 그런 교육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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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맘 2020-03-09 오후 2:59:09 
  와~ 저는 감탄 감탄하며 읽었네요.
그런데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왜 일까요?
목구멍까지 무언가 뜨거운게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태희의 글 솜씨에 놀라고.
태희가 바라본 적나라한 이 교육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서
반성도 해봅니다.

한때 저도 지율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엄청 혼을 냈던 기억이....
역시 엄마가 가르치는 건 아니란걸 절실히 느꼈었죠.
(전공이 피아노라서 학원에서는 엄청 친절한 쌤인데... 내 자식한텐
더 더 냉정해지고 무서워지게 되더라고요... ㅠㅠ)

한동안 피아노 근처도 안가던 지율이가 요즘엔
뉴에이지 음악이나 듀엣곡을 연습하며 재미를 알아가고 있어요.
(하고 싶단 마음이 드니 시키지도 않는데 스스로 하더라고요 ㅎㅎㅎ)

태희야....
태희가 바라보는 현실에 격하게 공감하지만
힘이없는 어른이고,,, 엄마여서 왠지 씁쓸해지고 미안해지네~~~~

티끌 모아 태산이란말이 있지....
적절한 표현일런지 모르겠지만,
더불어 행복한 품위 있는 교육을 위해서 나 먼저...
우리 부꿈세에서 먼저 시작해볼면 어떨까 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어주어서 고마워...^^
태희의 출품작 넘 멋지다.
멋진 글... 태희의 멋진 소식 자주 전해주렴...^^
핑크또치 2020-03-05 오후 10:10:08 
  조은씨앗님~ 오랜만에 뵈어요^^
태희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른인 저도 따라가기 바쁜 세상에
어떻게든 뒤쳐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데,,
태희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그 넓은 생각을 응원합니다.
글의 품격이 느껴지는 태희 글 잘 읽고 갑니다^^
전경린 2020-02-25 오후 8:52:40 
  씨앗님~^^
태희를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충남학생문학제.
주제를 정하고 글을 생각을 쓴다는것이 참 멋집니다
시키는것만 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더 그런것 같아요.
저는 목표된 교육표어중에 기억남는 문구는
아이들이 신명나는 교육. 입니다.

태희의 고민은 한번씩 묻어나서 느끼고 있었는데
태희의 중2는 이렇게 지나는군요.
늘 태희다운 선택으로.
씨앗님 다운 지지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태희가 무엇을 꿈꾸든 이루어 지길 바래봅니다.
꿈꾸는영어 2020-02-25 오후 12:23:58 
  조은 씨앗님 정말 반갑습니다.^^
부꿈세에서 제일 많이 생각나는 분이셔요~

어떤책은 맛만 보고 어떤 책은 삼켜 버리고 어떤책은 잘 씹어서 소화시켜야 한다

태희의 글속에서 자립과 독서로 키워진 사고력을 품은 깊은 향기가 느껴져요
책과 현실과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을 꼬집어 얘기해 주고 있어요
기특하게 잘 자라고 있는 태희 언니
태희가 그 행복한 품위있는 교육의 수혜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심사위원들이 유연하다면 출품작 대상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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